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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I漢眞錄

抽象化

촌스럽다. 이 表現이 卑下的 表現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比較的 最近의 일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촌스럽다’는 것이 어쩌면 나의 正體性을 드러내는 表現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촌스러움에 躊躇함이 없었다. 하지만 都市가 支配하는 現代文明에서 ‘촌스럽다’는 말은 明白한 卑下의 意味를 지닌다. 最近 藝術에 關心을 갖게 되면서 美術史에도 많은 關心을 갖게 되었다. 美術史에 實際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關心을 갖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 역시 굉장히 좋아했던 루브르나 오랑주리 같은 곳의 古典과 新古典 形態의 美術을 지나면 抽象美術의 世界가 시작된다. 그 地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數學 역시 어느 時代를 지나면서 抽象代數學에서 보듯 많은 것이 抽象化되어 온 學問이었다. 그렇다. 實際로 抽象이란 層位의 變化를 意味한다. 이미 基本的인 것들이 너무나 當然해져 더는 表現할 것이 없어질 때, 우리는 抽象으로 넘어가게 된다. 抽象化는 人類의 歷史에서 아주 頻繁하게, 아니 거의 언제나 있어 왔다. 우리도 流行에 따라 單語를 變形해 쓰거나 略語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런 것들 또한 하나의 抽象化 作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조금 더 높은 層位에서 본다면, 卑俗語를 쓰는 것 역시 自身의 感情을 날것 그대로 매우 單純化하여 表現하는 方式이다. 그런 점에서 卑俗語 使用이 非難받는 까닭을 ‘抽象化되지 않은 촌스러움’과 連結해 볼 수 있다. 이는 本質의 問題가 아니라 세련됨의 問題였던 것이다. 점점 사람들은 말의 必要性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말은 意味가 없기 때문이다. 말이 意味가 없다. 언제나 行動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더 信賴를 줄 수 있다. 말이 많을수록 自信感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말이 아닌 다른 意思表現의 方法을 찾게 되고, 바로 그 地點에서 藝術의 本格的이고 眞正한 價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